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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해전 순서 업적 명언 본문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구국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 해전 순서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가끔 드라마나 영화등 방송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 해전이 소개되지만 해전 순서가 헷갈릴때가 있어 찾아봅니다.
오늘은 이순신 장군 해전 순서를 간단하게 정리하고 업적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참고로 임진왜란(1592~1598)이전에 이순신 장군의 전투가 두 번 소개 됩니다.
녹둔도에서 1587년 9월과 1588년 1월에 두번의 전투가 있었으며 포로를 구출하고 적을 400여명 사살하였으며 말과 소를 획득하였다. ( 이 전투로 백의종군에서 풀리게 됩니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 해전이 시작됩니다.
대한민국 모든 분들이 아시겠지만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모든 전투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전투일 | 장소 | 이순신외 참여장수 | 일본장수 | 업적 왜선 격파 |
1592년 | ||||
5월 7일 | 옥포 |
| 도오도오 다카도라 | 26척 |
5월 7일 | 합포 | 원균 | 와키사까 야스히로 | 5척 |
5월 8일 | 적진포 | 원균 | 와키사까 야스히로 | 11척 |
5월 29일 | 사천 | 원균 | 가메이타 고레노리 | 13척 |
6월 2일 | 당포 | 원균 | 와키사까 야스히로 | 21척 |
6월 5일 | 당항포 | 원균 이억기 | 26척 | |
6월 7일 | 율포 | 원균 이억기 | 구루시마 미찌후사 | 7척 |
7월 8일 | 한산도 | 원균 이억기 | 와키사까 야스히로 | 47척 12척 나포 |
7월 11일 | 안골포 | 원균 이억기 | 구기 요시다까 | 42척 |
8월 29일 | 장림포 | 원균 이억기 |
| 도주 |
9월 1일 | 다대포 | 원균 이억기 |
| 128척 |
1593.2.6 | 웅포 | 원균 이억기 | 구마다니 | 100명 사살 |
1594.3.4 | 당항포 |
| 와키사까 야스히로 | 31척 |
1594.9.29 | 장문포 |
| 후꾸하라 | 2척 |
1594.10.1 | 영등포 |
| 시마쯔 |
|
1594.10.4 | 장문포 |
| 후꾸시마 |
|
1597.8.28 | 어란진 |
| 도오도오 다까도라 | 도주 |
1597.9.7 | 벽파진 |
| 도오도오 다까도라 | 도주 |
1597.9.16 | 명량 |
| 도오도오 다까도라 | 31척 |
1598.7.18 | 철이도 | 진린 |
| 50척 |
1598.9.19 ~11.15 | 관양만 왜교성 | 권율 진린 | 고니시 유끼나가 | 30척 11척 나포 |
1598.11.18 ~11.19 | 노량 관음포 | 진린 | 고니시 유끼나가 | 200척 50척 도주 |
임진왜란때 이순신 장군이 참여한 23번의 전투에서 23승의 전승 전투 기록은 세계적으로도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기록이다.
이순신 장군은 1945년 음력으로 3월 8일에 한성(서울 건천동)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576년 32세의 나이에 어렵게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섰으며 1587년 녹둔도의 둔전을 관리하는 녹도 둔전사의가 되었다.
녹둔도의 둔전을 관리하던 중 여진족의 동태가 의심스러워 북병사 이일에게 추가 병력을 요청하였으나 거절 당했으며 결국에는 여진족의 침입으로 조선군 11명이 죽고 150여명이 잡혀갔다.
이것이 이순신 장군의 유일한 패전으로 기록되는 전투이다. 이후 이 녹둔도 전투의 패인을 모두 이순신에게 전가되어 백의종군하게 되었지만 여진족 장수를 잡아 다시 사면받고 공직에 복귀했다.
이후 이순신이 전라좌도수군절도사 시절인 1592년 고니시 유키나가가 왜군을 이끌고 부산을 침략하며 임지왜란이 시작되었다.
조선의 해전에서 첫 승전을 알린 옥포해전 부터 시작하여 연전연승을 올린 이순신장군은 초기에 연승과는 달리 너무 신중하며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1597년 4월 11일 두 번째 백의종군을 하게 된다.
(이때 원균과의 불화, 이순신의 우상화, 또한 일본의 술수 등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원균이 칠전량 해전에서 대패하며 다시 이순신 장군은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 하게 되지만 조선에는 12척의 전선만 남게된다.
그리고 일단 전열을 가다듬어 다시 전투에 임하라는 말에 충무공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라고 명언을 남기며 명량에서 12척의 배로 적의 330여척의 적선과 상대해 130여척의 배를 격파하는 상상할 수 없는 업적을 기록한다.
전세는 역전되어 일본군은 도망가기 급박했으며 1598년 8월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어 조선에서 철수를 시작했다.
이순신장군 마지막 전투는 1598년 음력 11월 19일 노량대첩으로 조선에서 철수하는 일본군을 공격하여 200여 척을 격파하고 나머지 왜선은 도망갔으나 계속 추격하던중 이순신 장군은 왜군이 쏜 총탄에 맞아 전사한다.
전사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유언은 남기고 끝까지 전투에 임하였으며 임진왜란 7년 전쟁도 끝이 났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싸움에 나서기전 장수들을 불러모아 이야기 했던 유명한 명언인 필사즉생필생즉사 (必死卽生 必生卽死) 전쟁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며 살 것이고 살려고 한다면 죽는다는 말이 이순신 장군이 전쟁에 임하는 자세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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