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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가계도

조선 15대 왕 광해군 가계도

빌딩멘토 2022. 5. 24. 01:33

광해군"光海君"은 1575년 6월 4일(음력 4월 26일)에 "선조(14대 왕)"와 후궁이었던 "공빈 김씨" 사이에서 2남으로 태어났으며 초명은 "이혼", 이후에 "광해군"에 봉해졌습니다.

 

어머니 "공빈 김씨"가 광해군이 태어나고 2년 만에 세상을 떠나면서 자녀가 없었던 왕비 "의인왕후 박씨"의 보살핌 속에서 형 "임해군"과 함께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선조"는 왕비 사이에서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왕세자" 책봉을 미루고 있었는데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더는 미룰수 없어 총명했던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했습니다.

 

이후 임진왜란을 극복하는데 많은 공을 세운 "광해군"은 순조롭게 왕위를 계승하는 듯했지만 "선조"의 새로운 왕비로 책봉된 "인목왕후 김씨"가 1606년 "영창대군"을 낳으면서 세자의 자리를 위협받게 됩니다.

 

하지만 1608년 "선조"가 갑자기 승하하면서 "광해군"이 34살의 나이에 조선 15대 국왕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이후 자신의 자리를 위협했던 세력들을 가차없이 제거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오게 됩니다.

 

또한 광해군은 명나라와 후금(청나라) 사이에서 전쟁이 발생하였을때 중립 외교를 펼치면서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 했는데 이러한 과정에서도 신하들의 불만이 증폭됩니다.

 

결국 1623년 음력 3월 12일 이귀, 김류, 이괄 등 서인 일파가 주도하고 남인도 동조하는 반정이 일어나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선조"의 5남 "정원군"의 아들 능양군(인조)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이후 광해군은 유배지를 전전하다가 1641년 67세의 나이에 사망했습니다.

 

광해군은 정비 "문성군부인 유씨" 사이에서 아들 1명이 있었는데 인조반정으로 폐세자되어 사사되었습니다.

 

후궁은 9명(숙의 윤씨, 숙의 허씨, 숙의 홍씨, 숙의 권씨, 숙의 원씨, 소용 임씨, 소용 정씨, 숙원 신씨, 조씨) 이상 있었는데 "숙의 윤씨" 사이에서 딸(옹주)만 1명 있었습니다.

 

조부: 덕흥대원군 "1530~1559"

조모: 하동부대부인 "1531~1567"


부"父": 선조 "1552~1608" *14대 왕
모"母": 공빈 김씨 "1553~1577"


광해군"光海君" "1575~1641"

(재위 기간: 1608~1623)

 

왕의 아들 중에서 다음 왕위를 계승할 아들을 "왕세자"로 책봉하며 그밖에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대군"과 "공주"로 부르며 후궁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군"과 "옹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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